그러나 그가 찔린 것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고, 그가 상처를 받은 것은 우리의 악함 때문이다.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써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매를 맞음으로써 우리의 병이 나았다.
- 이사야 53:5
때문에......
그가 찔림과 상처를 받은 것, 징계를 받음, 매를 맞음
다 나 때문임을 기억하자.
덕분에......
우리가 허물이 있고 악하나 주님 덕분에
내가 평화를 누리고 병이 나았음을 기억하자.
오늘은 그 뿐이렸다.
여전히 나의 과거부터 현재, 미래 전체에 대한 그 모든 나 때문에 주님은 오늘도 그 십자가에서 고통당하심을 조금만 더 기억하고 상기시켜보자.
나 또한 내가 할 수 있는 찔림과 상처받음, 징계 받음, 매 맞음을
(가학적인 관점이 아니라, 사랑의 관점에서 주님이 나를 그렇게 하신 것 같이)
나 또한 내 삶의 현장에서 실행하자.
+아내의 이야기. ........아니, 숨겨진 세상 이야기
오후에 아내가 아이랑 같이 잠시 밖에 바람쐬러 나갔다 온다고 했다.
얼마전 구매한 유아 선글라스를 끼우고 아기띠로 아이랑 같은 곳을 바라보며 걸어가고 있는데,
마침 하교 시간에 지나가던 학부모와 초등학생들 무리를 만나 얘기치 못한 동네 스타가 된 느낌이었단다.
같은 방향으로 걷던 중년부부도 돌아보고는 어쩜 이리 귀엽냐고들 하셨단다.
그런데 오늘 이야기는 이제 시작된다.
이어서 카페로 걸어가던 중 낡은 손수레에 폐지를 수거하시는 할아버지께서 아내쪽으로 다가왔다.
아내는 횡단보도에서 멈췄고 그때 코앞까지 와서는
'이거 받어유' 하고 돈을 우리 아내 손에 쥐어줬다.
갑작스런 상황에 아니라고... 안받으려고 하자 금새 도망가는듯 빨리 저만치 가셨다고 한다. 오히려 따라가서 2만원이라도 드리려는 마음으로 신호가 바뀌고 빨리 이길 저길 따라가봤는데 온데간데 없이 안보인다.
'천사를 만난걸까?'
그리고 바로 너무 놀라서 내게 전화를 한 것이었다.
아내가 얘기해주는 이 상황 속 건내받은 돈은 내게 두 렙돈으로 들렸다.
이 아이가 우리에게 찾아와준 뒤로 나만의 상식이나 가치관이 하루가 멀다하고 자주 깨지고 있다.
이번 또한 마찬가지였다.
지난번 100일 기념떡 경비아저씨 보다 더 큰 메아리가 치고 있다.
나눔에 대해서 생각해볼 때 보통 이런 얘기를 한다.
나눔이란 돈이 있어야 나눌 수 있는게 아니라 마음이 있어야 나눌 수 있다고...
겉보기에 오늘 만난 초등학생 가족이나 중년부부나 지나가던 그 누구부다도 경제적으로 볼 때는
폐지수거하시는 할아버지께서 제일 약자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예쁘다는 말도 없고 그냥 이거 받아요 하던 그 할아버지의 모습이 안봐도 그려진다.
예수께서 눈을 들어 부자들이 헌금궤에 헌금 넣는 것을 보시고,
또 어떤 가난한 과부가 거기에 렙돈 두닢을 넣는 것을 보셨다.
- 누가복음 21:1-2
그런데 이 할아버지의 이천원 때문에 우리는 오늘 과부의 두 렙돈을 보았다.
그 횡단보도의 상황을 지나가던 사람들도 보았을까?
우리 곁에 계시는 주님께서도 보셨을 것이다.
시온이도 보고있다.
같은 공간에서 본 많은 다른 사람들은 어떤 생각을 할까?
또 같은 순간 다른 공간의 사람들은 그 순간의 삶을 어떻게 살고 있었을까?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이 주변 사람들에게 귀감이 된다면 우리는 이미 천국에 있는 것과 같다.
나는 오늘도 그러한 시늉을 하려하고 그런척 말하기에 바쁘지만,
그런 포장을 내려놓고 삶으로 증명할 수 있도록 해야겠다.
"감사합니다."
한 인간의 탄생이 창조이고 그의 성장이 하나님의 섭리로 가득한 창세기의 역사라고 믿는 하루 하루를 살아가며...
이 아이는 폐지 수거하는 할아버지(예수님?)의 자녀이고 나는 그 분의 일꾼으로 아이의 성장을 담당하는 청지기라는 생각을 해본다.
그동안 나도 참 많은 세상의 소리에 오해를 하고 있었던 것 같다.
자극적인 뉴스들에 학습되어 세상은 참 살기 각박한 곳이라고 생각했지만 그렇지 않다.
몇주 전 들었던 출애굽기 말씀처럼 하나님은 이미 말씀하셨는데 우리가 못듣고 있듯,
나는 아직도 이미 이 세상은 하나님께서 너무나도 좋은, 아니 최고의 것으로 우리를 살아가도록 해주셨는데,
스스로 나의 욕심 또는 아집으로 하나님이 아닌 다른 곳을 보면서 왜 좋은게 없냐고 하며 살아가고 있었던 것 같다.
오늘도 이 아이를 통해 하나님을 본다.
과연 내가 이 아이에게 하나님이 누구신지 알려줄 부모가 맞는가?
18. 아내된 이 여러분, 남편에게 순종하십시오. 이것이 주님 안에서 합당한 일입니다.
19. 남편된 이 여러분, 아내를 사랑하십시오. 아내를 모질게 대하지 마십시오.
20. 자녀된 이 여러분, 모든 일에 부모에게 복종하십시오.
이것이 주님을 기쁘게 해 드리는 일입니다.
20. 어버이된 이 여러분, 여러분의 자녀들을 격분하게 하지 마십시오.
그들의 의기를 꺾지 않아야 합니다.
- 골로새서 3:18-21
가훈으로 너무 좋은 말씀이다.
나는 오늘 이 말씀을 이렇게 읽어본다.
18. 내 아내가 나에게 순종할 만큼 나는 주님앞에서 합당하게 살고 대하는가?
19. 아내는 내 사랑을 충분히 받고 있고, 모질게 대한다고 느끼지는 않는가?
20. 아이는 부모의 모든 것을 보고 기억하고 흡수하는데, 이 아이 앞에서 나는 주님을 기쁘시게 살고 있는가?
21. 아이가 격분하거나 의기가 꺾인다고 느낄 정도로 아이의 의견을 무시하고 아이의 필요를 채워주지 못하고 있지는 않는가?
폐지 수거하시는 할아버지는 아셨던 것 같다.
아기띠를 하고 걸어가는 한 아이의 엄마가 이 시대에 얼마나 힘겹게 살아가고 있는지...
꼭 본인 때문에 그렇다고 생각하지 않아도 '우리 아이', '우리 아이 엄마'라는 생각을 가지셨던 것 같다.
나도 알아야겠다. 폐지 수거하시는 할아버지가 얼마나 힘겹게 살아오셨는지...
그리고 그 힘겨운 삶 속에서도 폐지만 보기에 바쁠 것 같은 그 상황에서도 한 아이와 그 아이 엄마를 봐주심으로
우리 마음에 평화와 감탄이 일어났는다는 것을.
나의 시선을 돌리자!
나 때문에, 당신 덕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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