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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육아/이야기

[WIth ZIon] 134일, 하나님의 매질

by 가을목소리 2021. 5.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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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WISH YOU THE BEST IN YOUR LIFE.

- 2021. 5. 10

선을 행함과 가진 것을 나눠주기를 소홀히 하지 마십시오.

하나님께서는 이런 제사를 기뻐하십니다.

- 히브리서 13장 16절

나단이가 새벽 4시 정도에 울어서 30분가량 달래다가 결국 어머님이 데려가셔서 분유 주시고 8시에서야 일어나 (재택) 출근을 했다. 아내는 새벽동안 내 친구 꿈을 꾸면서 약간 불편한 밤을 보냈었다.

하지만 나는 일을 해야 하기에 어쩔 수 없이 이른 아침 시온이와 함께 하루를 시작했다.

점심에는 아버님께서 오셔서 좀 수월하게 점심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식사 후 아버님은 귀가하시고 아내는 잠시 후 나단이와 함께 커피 한 잔을 사러 다녀왔다.

주변에 커피숍이 있어서 너무 다행이다. 요즘 같은 때에 도심에 카페가 없으면 어딜 가게 될까?

퇴근시간이 지나고 6시에 수유를 하고 나니 곧 대변을 본다. 타이밍이 너무 좋다! 대변을 정리해 주고 바로 목욕을 시켰다. 이제는 뭐 물이라면 좋아할 뿐 아니라 여유도 넘친다.

처음에는 많이 버겁고 불편해도 반복되는 일정한 온도와 편하게 씻겨주는 시간이 반복되면서 어린아이도 양육자에 대한 신뢰가 쌓이면서 그에 대한 마음의 편안함이 생기는 것 같다.

목욕을 마칠 즈음에 어머님과 아버님이 오셔서 마무리 도와달라고 부탁드리고 나도 샤워를 했다.

아침에 했어야는 데 못하고 이제서야 한다. 아무리 재택근무하는 날이라도 하루에 한 번은 씻으려고 한다.

식사하면서 훈육에 대한 얘기가 나왔다. 식사 후까지 이어지다가 나단이를 재우고 나온 뒤 본격적으로 대화가 진행되었다.

아이 꾸짖는 것을 삼가지 말아라. 매질을 한다고 하여서 죽지는 않는다.

그에게 매질을 하는 것이, 오히려 그의 목숨을 스올에서 구하는 일이다.

- 잠언 23장 13절, 14절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힘이 있어서, 어떤 양날 칼보다도 더 날카롭습니다. 그래서, 사람 속을 꿰뚫어 혼과 영을 갈라내고, 관절과 골수를 갈라놓기까지 하며, 마음에 품은 생각과 의도를 밝혀냅니다.

- 히브리서 4장 12절

아내의 입을 통해 깨달음을 하나 얻었다. 성경적으로 자녀를 훈육한다는 것이 무엇일까?

유명한 말씀 중 한 구절이 잠언 23장 13,14절 말씀이다.

아내는 요즘 아동학대가 큰 사회적 이슈라서 단순히 매를 아예 대지 않고 키워야나? 매를 대야나?로 생각하다가 요즘 '말로 때린다.'라는 얘기가 있는데, 히브리서 4장 12절 말씀을 생각해 보면 구약에서의 매질은 신약에 와서 이미 완성된 하나님의 말씀이 진정한 매라고 해석할 수도 있겠다.

더 궁금해서 히브리어 잠언 성경을 검색해봤다.

보통 이 구절을 1차원적으로 보면 자녀를 제대로 양육하기 위해서 매질을 하라는 말씀으로 들린다.

하지만 강조점은 아이가 육체적 죽음 또는 도적적, 사회적으로 죽은 행실에 빠지지 않도록 양육을 해야는데 이때 채찍으로 때려서라도 죽음에 빠지지 않도록 하라는 데에 있다.

다시 말해 채찍으로 맞아 생길 상처를 두려워하여 어린 자식의 잘못된 행실을 교정해 주지 않으면 더 큰 죄악으로 빠져 영육이 멸망으로 빠지게 된다는 뜻이다.

아내의 말을 다시 적용해 보면 제대로 된 말씀으로 양육하지 않으면 아이는 언제든지 죄의 길로 빠질 수 있으니,

우리 부모가 먼저 말씀으로 제대로 서야 한다는 말씀이고, 정말 말씀으로 연단되어야 한다는 말이 된다.

또한 자녀에게 내가 가하는 매질이 있을 경우 그 매질은 분명히 그 매질로 인해 얻은 상처보다 막아낸 상처가 더 커야만 한다.

아침 말씀의 선은 무엇이고, 나눠주기는 무엇일까? 하루하루 아이 키우기 바쁜 이 시기에 어떻게 이 말씀을 적용할 수 있을까 생각해 본다.

말 그대로 아이 키우느라 정신없는 내게 하나님께서 주시는 말씀이다.

히브리서는 저자가 누군지 모르는 성경으로 전에 이광희 목사님을 통해 수련회 때 아주 자세히 성경공부를 한 적이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또다시 기억이 흐려졌다. 수련회 노트를 찾아봐야겠다.)

13장은 성도들을 향한 히브리서 기자의 마지막 호소이다. 예배가 무엇인지 설교하던 기자는 마지막으로 실제 삶에서의 예배가 무엇인지 강조하고 있다.

구약의 희상 제사는 그 당시의 언약으로 중요했지만 예수님이 오신 후에는 짐승과 곡식을 통한 제물이 예수님이라는 완전한 제물로 단번에 제사가 완성되었다. 그리고 우리에게는 영원한 제물 되신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감사와 찬송의 제사(예배)를 신령과 진정으로 드리도록 하셨다.

이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이런 제사를 기뻐하신다고 말씀하신다.

그래서 15절을 통해 하나님께 찬미의 제사를 드리라고 말하고

16절을 통해서는 사람들에게 선을 행함과 가진 것을 나눠주라고 말한다.

결국 많이 듣는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인 것이다. (성경은 어쩜 이리 다양한 사람을 통해 기록되었어도... 같은 말씀을!)

헬라어 성경을 또 찾아보았다.

'선을 행함'의 헬라어 '유포이이아스'는 타인에게 관심을 보이는 모든 친절한 행위를 가리키고,

'(서로) 나눠 주기'의 헬라어 '코이노니아스'는 돈이나 물건 등 다른 사람의 필요를 채워줄 수 있는 모든 것을 나누는 관용을 가리킨다고 한다.

이렇게 이웃 사랑으로 사랑의 열매가 맺히지 않으면 반쪽짜리 신앙이기에 15절에 이서 16절 말씀까지 이어지고 나서야 하나님께서 기뻐하신다고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나 또한 하나님만 본다고 아내를 외면하지 않고,

하나님과 아내를 위한다고 내 자식을 외면하지 않고(아내를 의식해서 이렇게 써본다.)

하나님과 아내, 자식을 앞세워 부모를 외면하지 않고

하나님과 가족들만 생각한다고 다른 이웃들을 외면하지 않아야겠다.

누군지 이름도 모르고 얼굴도 처음 봤는데 주머니에서 2,000원을 꺼내 준 폐지수거하시는 할아버지처럼.

새신자반 중에서

 

PS. 재미있는 구약과 신약의 차이를 또 찾았다.

구약에서 족보는 낳고~ 살다가~ 죽었다. 또 낳고~ 살다가~ 죽었다. 가 반복된다.

노아 시대의 족보를 보면 노아라는 위대한 인물을 그 위 세대들이 잘 키운 것인데 대부분은 기록은 그냥 낳고 살다가 죽었다가 전부이다. 나 또한 그렇게 이 땅에서 살다 가면 잘했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라는 소리를 들을 것이다.

가정이 우주다!

어쨌든 신약에서의 족보는 낳고~, 낳고~, 낳고~, 낳고~..

왜 낳기만 할까? 그 내용은 아래 링크로

족보의 '죽고'와 '낳고'의 구속사:리폼드뉴스 (reformednews.co.kr)

......

모든 세대 족보의 마침이 “죽었더라”로 끝을 맺는다. 이것은 인생이란 죗값으로 한 번 낳으면 반드시 죽는다는 유한한 존재임을 각성시키고 있다. “죄의 삯은 사망”(롬 6:23)이라는 원인 결과론을 분명히 밝혀주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족보의 전제는 죄의 삯인 사망에서 구원할 자가 필요하다는 것을 언질하고 있는 것이요 이것도 이미 하나님께서 준비하셨다고 하는 구속과 완성을 내다보게 하는 하나님의 천국 센스인 것이다.

......

보는 바와 같이 “죽고”는 없고 “낳고”만이 연속적으로 나오고 있다. 왜 “죽고”는 없고 “낳고”만 있을까? 이것은 하나님의 뜻이며 마태의 의도이기도 하다. 구약은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온 결과로 죽음에 초점을 맞추었다면 신약 마태복음은 낳고에 초점을 두어 죄로 말미암아 죽은 인생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새 생명으로 태어나게 됨을 예언적으로 강조하려는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는 생명의 주시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는 영생하는 생명이 계속 태어나게 되는 것이다.

 

문법적으로 보면 모든 사람의 출생에 대하여 “낳고”는 ‘에겐네센’(ἐγέννησεν)으로 부정과거 능동태를 사용하여 단회적 사건임과 동시에 부모에 의한 능동적 출생을 강조하였는가 하면, 예수 그리스도의 태어나심에 대해서는 ‘에겐네데’(ἐγεννήθη)로 부정과거 수동태를 사용하여 부모에 의한 능동적 태어남이 아니고 성령에 의하여 수동적으로 태어나게 된 사건을 암시해 주고 있다. 이와 같이 예수 그리스도는 죄를 물려받은 육체를 따라 태어난 것이 아니고 성령을 따라 무죄한 인간으로 오셔서 우리 죄를 십자가에서 대속해 주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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