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ISH YOU THE BEST IN YOUR LIFE.
- 2021. 5. 15
마음이 가난한 사람은 복이 있다. 하늘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 마태복음 5장 3절 (새번역)
토요일 아침 느지막이 8시에 일어났다. 지난밤에 아내와 침대에서 자리를 바꾸어 내가 아기침대 바로 옆에서 잤다. 새벽에 중간에 깼는데 바로 옆에 나단이가 엎드러져 누워있었다. 뒤집기를 해서 우리 침대로 넘어온 것이다. 어쩜 밤중 고요한 이때에도 뒤집기를 할까.... 엄마, 아빠 곁으로 오고 싶은 걸까?
몇 번을 바로 눕히기를 반복하다가 시간이 흘러 새벽 4시가 가까워 다시 수유를 했다. 그리고 아내가 소화를 시키고 있다가 잠시 뒤 어머님이 오셔서 나단이를 데리고 가주셨다. 거의 항상 이런 때마다 세상 모든 어머니들이 존경스럽다. 낮에도 재우려고 하면 요즘 우는 때가 많아진 것 같다.
모처럼 풋살장이 아닌 축구장에서 축구팀의 운동이 있는 날이었고 여유 있는 10시 경기여서 축구를 하러 갔다. 오랜만에 가서 몸이 꽤나 무거웠다. 그렇다고 실력이 떨어지거나 그러지는 않았던 것 같다. 골로 연결되는 좋은 컷백도 하고 나름 잘 뛰었다. 참석자도 충분하지 않고 차기 운영위원 선출도 있고 하여 참석을 더 해야겠다는 생각이 있었다. 또 육아만 한다고 체력이 아껴지는 것도 아니었기에 한번 뛰기로 했는데, 막상 운동하고 나니 정말 좋았다. 운동이 끝나고는 운전을 해서 집으로 가는데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이 또한 정말 좋았다. 시원하게 내리는 비에 라디오에서는 비발디 사계와 캐논 등 딱 이 시점에 어울리는 클래식들이 쏟아져 나왔다. 집에 가는 길에 맥도날드에서 빅맥세트 등 햄버거를 사가기로 했다. 일명 제일 맛있는 음식인 '남이 차려주는 음식'을 준비하고 다시 운전을 했다. 비가 더욱 시원하게 내리며 집 근처 신호 대기 중 도로 중앙 화단엔 장미인지 꽃이 큼지막하게 활짝 펴있었다.
예뻤다. 비가 내리면 우울한 게 아니라 꽃이 핀다. 인생에서도 비가 내릴 때 삶에 거름이 됨을 기억하고 그 비를 즐기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집에 도착해서 맛있게 먹고 샤워를 했다. 샤워하는 동안엔 또 나단이가 잠자기가 싫은 건지 한참 우는소리와 아내와 어머님이 나단이를 도와주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잠시 쉬다가 오후 느지막이 얼마 전 고촌으로 이사 온 친구네 집으로 향했다. 나단이 보다 훨씬 형과 곧 동생 출산을 앞두고 있는데 그들의 육아 시간은 어떤지 궁금했다.
도착해보니 조용하고 위험요소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너무 쾌적한 동네였다. 주차장에서는 자리가 없어 좀 멀리 주차하고 초인종을 눌렀는데 알고 보니 동 숫자를 순서를 바꿔 읽어서 저 먼 곳으로 잘못 와서 다시 제대로 된 동으로 이동 주차했다. 지하에서 참 많은 시간을 보냈다. 아마도 내가 살고 있는 집의 동수가 102동이여서 120동을 잘못 본 것 같다.
간단한 롤케이크를 하나 준비해 갔고, 도착했더니 친구 아들은 낮잠을 자고 있었다.
임신한 친구도 어느덧 배가 많이 나왔고, 그 와중에 집도 아주 깨끗하게 치워놓았더라. 수고가 많았소~. 나단이에게도 반갑게 인사해 주고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 보니 친구 아들도 잠에서 깨어 나왔다. 갑자기 집에 온 손님에 어리둥절한지 잠이 덜 깬 얼굴로 계속 관찰하는 듯했다.
좋았어~, 오늘은 삼촌이랑 친해지자! 오늘도 마음먹고 나도 관찰 모드에 들어갔다.
DVD 플레이어로 호비라는 친구를 보는 걸 좋아하는 것 같았다. 대화를 몇 번 시도하다가 뭘 좋아하냐고 물어보니까 바로 그 DVD 플레이어를 찾아왔다. 그러고는 전원을 연결하려고 하고 DVD도 찾고 스스로 할 줄 아는 능력이 정말 대단했다. 나단이도 언젠가는 저렇게 스스로 할 날이 오겠지? 친구들은 친구들의 아이가 DVD 플레이어를 보여주기를 원하지 않는 것 같았고 크게 요동하지 않고 무섭지 않지만 확실하게 아니라고 받아주지 않았다. 아이들도 인격체라 이런 거에 속상하게 되면 얼마나 마음이 아픈지 알고 있어서 그에 맞게 대응하는 부모의 모습이 멋졌다. 잠시 뒤 저녁 식사가 준비될 때까지도 식탁 주변에 DVD 플레이어를 놓고 싶어 할 정도였다. 하지만 스스로 식사에 집중하기를 선택했다. 정말 그 큰 자기 기호를 버리고 필수인 식사를 선택하는 모습이 너무 대견했다. 밥 먹으면서부터는 아내와 나는 열심히 칭찬과 관심을 전폭적으로 쏟아주었다. 아, 그전에 앉아서 얘기할 때에는 나단이에게 좀 덜 관심을 줬다고 자기도 봐달라고 그러는지 옹알이를 꽤나 했다. 식사하는 도중 당근도 먹고 숟가락과 포크를 스스로 양손으로 사용하여 밥을 먹고 칭찬할 내용들이 정말 많았다. 물론 칭찬받을 일이 아니고 당연히 해야 한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난 오늘 너와 친해질 거니까, 하하하. 그렇게 교감을 하다 보니 어느새 식탁 밑으로 들어와서 장난도 치고 마음 문이 열렸다. 그리고 밥을 다 먹고 나서는 거실에 다른 장난감을 가져다 놓고 놀 준비를 하고 있었다. 기회다! '삼촌은 밥 거의 다 먹었으니가 이거 다 먹고 같이 놀까?' '... 응'
자기 의견을 나타내고 싶어 '아니야'를 잘 표현하던 아이는 어느새 마음 문을 열고 함께 할 수 있는 놀이를 선택한 것이다. 그렇게 나의 출장 육아(방금 생각난 단어.ㅋ)는 시작되었다. 기찻길을 같이 만들고 기찻길을 다닐 기차와 승객을 찾아다니고 왔다 갔다 반복하고 그렇게 기차를 움직이게 하면서 아이는 거실을 수십 바퀴를 돌았다. 오늘도 난 돌고래를 만났다. 돌고래 만나면 내 출장 육아는 성공이라고 생각한다. 아직 나단이는 돌고래 소리까지는 나오지 않지만, 그런 날이 오면 귀가 너무 아프지 않을까 하는 불필요한 염려도 해본다.
기차를 움직이게 할 때 배터리가 다 되었는지 움직이지 않아 아빠 찬스를 썼다. 그러면서 아빠 최고 칭찬도 해주었다. 직접적으로 말하지는 않았어도 아마 '원래도 관계가 좋지만 밖에서 다른 사람이 봐도 정말 좋은 아빠고 그걸 너도 알고 있지?'라고 질문을 들은 것처럼 생각할 거라는 느낌이 들었다.
친구는 나를 한번 안아주라고 제안했으나 아이는 포옹 대신 뽀뽀를 해줬다. 그러면서 아무에게나 뽀뽀 안 해준다고 부모는 놀라워했다.
그리고 잠시 뒤 나단이가 졸려 할 때 아가 재워야는데 어디서 재워야 하냐고 아이한테 물어보고 아이가 알려주는 방에서 재우기로 했다. 맨날 하는 게 아니기 때문에 출장 육아 때는 모든 규칙을 아이가 정하도록 하는 게 내 원칙이다. 그렇게 나단이와 아내, 임산부는 아이가 알려준 저쪽 방으로 가서 취침과 대화를 이어갔고, 친구는 부부끼리 정리하면 식사 뒷정리를 마저 했다. 그리고 아이와 나는 신나게 놀았고, 다시 장난감 방으로 들어가 다른 걸 찾다가 장난감방에서 발견한 자석으로 낚시 놀이와 탑 쌓기? 등을(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그런 방식을 뛰어넘음) 이어갔다. 그리고 8시 20분쯤 집에 가겠다고 이별 통보를 한번 시도하고 통하지 않아 30분까지 더 놀고(시계 큰 바늘이 아래로 반듯하게 서게 되면) 다음에 또 올까? 아니면 그냥 갈까? 이런 식?의 이별을 선택할 수 있게끔 질문을 한 뒤 설득을 했다. 그렇게 시간이 되어 이별을 했다. 역시나 자기주장이 생겨 간다고 하니까 '아니야'를 외쳤으나, 나와 포옹을 하고 이별을 했다. 즐거운 하루였다.
오늘 친구가 해준 말이 정말 기억에 남는다. 아이가 크면 크는 만큼 아이가 주는 기쁨도 더 커진다고. (물론 그만큼 더 힘들고.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동안 배 속에 있을 때가 제일 좋았다더니, 말 안 할 때가 좋지, 걸어 다니면 큰일 나... 등등 부정적인 말에만 너무 꽂혀있었는데, 오늘 친구의 말에 생명에 대해 다시 한번 진지하게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이 되었다.
마음이 가난한 자, 즉 마음이 편안하지 않은, 하나님만 의지할 수밖에 없는 이 육아가 한편으로 생각하면 정말 기쁘다.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힘든 순간들이 많지만, 하나님의 인간 육아는 얼마나 더하실까.
마음이 가난하여 넉넉히 하늘 시민처럼 이웃을 사랑하는 사람이 되고 그런 사람이 되도록 이 아이를 오늘도 믿고 기대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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