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4장 15절~16절
그 여자가 말하였다. “선생님, 그 물을 나에게 주셔서, 내가 목마르지도 않고, 또 물을 길으러 여기까지 나오지도 않게 해주십시오.” 예수께서 그 여자에게 말씀하셨다. “가서, 네 남편을 불러 오너라.” 그 여자가 대답하였다. “나에게는 남편이 없습니다.” 예수께서 여자에게 말씀하셨다. “남편이 없다고 한 말이 옳다. 너에게는, 남편이 다섯이나 있었고, 지금 같이 살고 있는 남자도 네 남편이 아니니, 바로 말하였다.” 여자가 말하였다. “선생님, 내가 보니, 선생님은 예언자이십니다. 우리 조상은 이 산에서 예배를 드렸는데, 선생님네 사람들은 예배드려야 할 곳이 예루살렘에 있다고 합니다.”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여자여, 내 말을 믿어라. 너희가 아버지께, 이 산에서 예배를 드려야 한다거나, 예루살렘에서 예배를 드려야 한다거나, 하지 않을 때가 올 것이다. 너희는 너희가 알지 못하는 것을 예배하고, 우리는 우리가 아는 분을 예배한다. 구원은 유대 사람들에게서 나기 때문이다. 참되게 예배를 드리는 사람들이 영과 진리로 아버지께 예배를 드릴 때가 온다. 지금이 바로 그 때이다.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예배를 드리는 사람들을 찾으신다. 하나님은 영이시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는 사람은 영과 진리로 예배를 드려야 한다.” 여자가 예수께 말했다. “나는 그리스도라고 하는 메시아가 오실 것을 압니다. 그가 오시면, 우리에게 모든 것을 알려 주실 것입니다.”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너에게 말하고 있는 내가 그다.”
요한복음서 4:15-26 RNKSV
예수님께서 의도를 가지고 사마리아로 가심. 사마리아 여인은 예수님을 처음 만났다. 삶 속에서 하나님의 샬롬을 상실한 채 살고 있었다.
남편을 불러 오라 말씀하심. 세상의 힘듦 속에서도 가정에가면 위로받을 수 있는 것이 마지막 희망일텐데 이 여자에게는 그러한 가정에서도 의지할 남편이 없었다.
그분이 찾아오셔도 그 분이 누구인지 모르면 샬롬은 내게 임하지 않는다. 그 때 이 여자도 예배를 드리던 사람이었다. 역시 예배를 드리고 있어도 하나님의 샬롬이 없다.
예배는 하나님께서 받으실만한 예배가 되도록 해주셔야 예배가 된다. 내가 아무리 열심히 한다고 해서 예배가 되는 것은 아니다.
그럼 어떻게 주님을 제대로 알고 예배할 수 있을까? 주어가 하나님이다. 내가 그분을 아는 것이 아니라 그분이 나로하여금 알게 해주셔야하는 것이다.
고전 12:3 .... 또 성령으로 아니하고든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
내 인생의 주인이 누구인지 알 수가 없다. 그런데 분명히 성령님이 찾아오셔서 알려주시지 않으시면 알 수 없다.
그래서 예배란 성전되신 그 분이 내 안에 오셔서 나를 성전되게 하심으로 나를 드리는 것이 예배이다.
장소와 어떤 형식의 개념이 아니다. 아버지께서 보내신 그 분을 알고 그 분을 믿고 그 분과 함께하는 삶 자체가 예배이다.
하나님께서 계시해주시지 않으시면 우리는 절대 알 수 없다. 순서를 잘 생각하자. 이것이 예배고 신앙생활이다.
하나님께서 이러한 예배자를 찾으신다고 말씀하신다. 정리해보면 예수없는 삶, 예수없는 가정, 예수없는 신앙생활이기에 샬롬이 없는 것이다.
그분의 임재로 모든 것을 예수님이 함께하시는 OO으로 바꾸자.
이 여인도 그분이 오셔서 메시아가 바로 나다!라고 말씀하신다.
메슬로(심리학자)의 5가지 욕구단계
1단계 : 생리적인 욕구.....5단계 : 자아실현
2안전의 욕구, 3소속과 사랑의 욕구, 4자기 존중의 욕구
다음에 8단계로 늘리는데 8단계가 바로 영적인 욕구이다. 다 가졌어도 그 분이 내 안계시지 않으면 결코 채워지지 않는다는 것을 말한다.
나는 충족된 삶을 살고 있는가? 나는 그분을 믿고 있는가? 다시 한번 나는 나를 그 분 앞에 굴복시키고 그 분의 다스림을 받고 있는가?
모든 문제의 해결은 그리스도가 내 삶의 주인의 자리에 오시면 된다!
이것이 초간단 인생메뉴얼!
오시옵소서!
주어 하나 차이로 결과는 정 반대가 된다.
내가 아닌 주를 주어(주인)으로!
왕 노릇 하지 말자! 참 왕되신 예수님께서 오심을 받아들이자!
https://youtu.be/g696oQnhEW4